TRPG 안전장치들 중 하나인 정지선과 가림막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RPG 스택 익스체인지 게시판의 질문과 답변을 번역했습니다.

한국 TRPG 커뮤니티에도 좋은 참고가 될 것 같아 번역해보았습니다.

https://rpg.stackexchange.com/questions/30906/what-do-the-terms-lines-and-veils-mean


GamerJosh의 질문: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합의하는 방법들 중, 이 스택익스체인지Stack Exchange 게시판에서 자주 논의된 “정지선Lines”“가림막Veils”이란 방법이 궁금합니다.

  •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 어떤 작품에서 이 이야기가 나왔나요?

  • 어떤 경우에 자주 사용되나요? (예시를 들어주면 좋겠습니다)

  • 테이블에서 이 방법을 소개할 때 어떤 식으로 소개할 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예를 들어 의도치않게 정지선을 넘거나 가림막을 치우기 전에 미리 플레이어를 보호하는 방법같은 것들이 궁금합니다.)



Alex P의 답변:


정의

사람들은 모두 참을 수 있는 한계와 버틸 수 있는 경계선이 있습니다. 정지선과 가림막Lines and Veils은 이 경계선을 RPG 플레이 중 명시적으로 다루는 방법들 중 하나입니다.

정지선은… 네, 정지선입니다. 한계점이자 절대 넘지 말아야 할 선이죠. 정지선은 RPG 테이블에서 절대 롤플레이하지 않을 것들을 의미합니다.

“저희 테이블에서는 고문을 소재로 쓰지 않을 겁니다. 저희도 고문을 하지 않을 거고, NPC들도 저희에게 고문을 하지 않을 거예요. 게임 설정상 어딘가에서 고문을 한다고 하면 저희 테이블에서는 오로지 게임을 안전하게 즐기기 위해 그 설정을 버릴 겁니다.” 1)

가림막은 영화에서 카메라가 시선을 피하거나 화면이 암전되는 순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게임 플레이 도중 어떤 이야기 소재에 가림막을 칠 때, 그 소재를 스토리의 일부로 삼지만 중심적으로 조명하진 말아야 합니다. 구체적인 묘사를 피하면서 게임의 주제를 최대한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면 좋습니다.

“이 게임 세계에서는 고문이 행해지고 있고, 저희 테이블에서도 어떤 형식으로든 고문이 일어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고문이 정말로 행해질 때 저희는 절대 이걸 그대로 롤플레이하거나 직접 묘사하지 않을 겁니다. 만약 고문을 여러분의 캐릭터로 다루게 된다면 여러분의 표현이 적나라한 간접경험이 되지 않게 서로 주의를 해야 합니다.” 1)


배경

수 년 전에 포지Forge란 포럼의 논의와 소서러Sorcerer란 게임의 서플리먼트인 섹스 앤 소서리Sex and Socery에서 이 방법론이 나왔습니다. 게임 내에서 까다로운 내용을 다루면서도 보다 많은 사람이 이 내용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한 인디 RPG 커뮤니티는, 정지선과 가림막같은 안전장치들이 더욱 많이 나올 수 있는 기틀이 되었죠.


플레이 도중 사용하는 방법

위에 적어둔 예시처럼 플레이 전에 테이블에서 여러 제한을 걸어둘 수 있습니다. 게임의 시스템, 설정, 그리고 플레이할 장르에서 자주 다뤄질 소재를 어떻게 표현할지 미리 논의하는 좋은 접근방식이기도 합니다. “12세 이용가로 합시다”라고 하는 것처럼 많은 테이블에서 표현의 제한범위를 축약해서 적어두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플레이 도중 일어나는 문제를 다룰 때 이 정지선과 가림막 안전장치가 비로소 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애초에 게임을 진행하기 전에 플레이에서 생길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대비할 수 없으며, 이 방법은 플레이어들간 서로 즐거울 수 있는 지점을 찾아가는 과정들 중 하나이니까요.

이 방법을 쓸 땐 플레이어가 쉽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일방적으로 판단하지 않으며 협력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단 이야기입니다. 정지선과 가림막을 논할 때 보통 다음과 같은 흐름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건 하지 말아주세요.”

“아이고, 죄송합니다. 고쳐봅시다” 

절대로 제한이 생겼다고 해서 말싸움을 하지 마세요. 절대로 남에게 책임을 돌리지 마세요. 불쾌함을 느낀 사람이 왜 불쾌함을 느꼈는지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말하든 말하지 않든 모두 괜찮습니다. 문제를 확인하고, 서로의 요구와 바람에 맞게 문제를 고치고, 다음엔 실수하지 않도록 유념해둔 뒤, 플레이를 재개합니다.


정지선과 가림막을 논할 땐 대부분의 경우 안전장치를 더 추가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까다로운 소재를 다루거나 처음 보는 사람들과 플레이를 할 땐 안전장치를 더 추가하는 게 도움이 될 겁니다. 다음과 같은 안전장치를 도입하는 걸 고려해보세요.

  • X카드는 “이건 제가 생각하는 정지선을 넘습니다”를 대신 표현해줄 수 있는 물리적 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와 더불어 “이건 좀 힘들긴 해도 적극적으로 진행해도 괜찮습니다”를 표현할 수 있게 변조를 줄만한 여지도 있습니다.)
    링크: http://cympub.kr/xcard
    (역주: O카드가 그 변조겠군요. 이 정지선과 가림막이 있었기에 X카드가 생겼습니다. 정지선과 가림막이 금지할 것을 명시하기 때문에 생기는 단점을 보조하기 위해 어떤 것도 적지 않는 X카드를 만들었지만, 역설적으로 함께 사용한다면 정지선과 가림막이 가질 단점을 상쇄한다는 것도 재밌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 대본 바꾸기 툴박스는 이 안전장치를 영화를 편집하는 듯이 접근하게 합니다. 특정한 내용을 천천히 세심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링크: http://cympub.kr/scriptchange

  • 룩스톤 기법Luxton Technique은 게임 내용을 진행시키기 힘들어하는 플레이어에게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수정할 수 있는 권한을 주어 최대한 편안하고 안전하게 내용을 다루는 방법입니다. 플레이 테이블에 X카드를 놓고 플레이한다고 이미 결정했다고 해도 이 게시글을 읽어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방법론 하나만으로 모든 상황을 해결할 순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게시글이기도 하니 참고가 될 것입니다.
    링크: https://roongrpg.postype.com/post/9854671

  • TTRPG 안전 도구는 이런 종류의 방법론들을 선택해 추린 모음집입니다.
    링크(영문): 
    https://drive.google.com/drive/folders/114jRmhzBpdqkAlhmveis0nmW73qkAZCj


게임 내에서 정지선과 가림막은 의사소통, 예의,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가림막이나 X카드는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계속 가꾸어나가는 대인관계 접근법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않습니다. 이 장치는 그 접근법들을 언제 쓸 지 신호를 줄 뿐입니다. “문제 있는 내용을 바꾸고, 다음으로 진행한다”는 핵심 전제가 잘 작동해줄지도 모르지만,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문제에 따라, 게임에 따라 다르니까요. 2)

아무리 이런 방법들로 제한사항과 안전장치들 정한다고 해도 이런 방법들이 절대 사람들이 주는 비언어적 신호들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다른 사람이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항상 괜찮은 건 절대 아니기 때문입니다. 수줍은 플레이어나 트라우마를 유발해서 놀란 플레이어는 그 순간에 정지선을 제안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반응하는지 주의하고 그에 따라 플레이를 조정해주세요.



1)소서러의 저자인 론 에드워드의 예시입니다.

2)몬스터하트의 저자 에이버리 얼더의 첨언입니다. 세이프 하츠라는 미니 서플리먼트를 확인해보시면, 감정적으로 격양시키는 내용을 어떻게 다뤄야 할 지 조언을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링크(영문): 
http://buriedwithoutceremony.com/wp-content/uploads/2017/01/safe-hearts.pdf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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